🏛️ 정치

이란, 호르무즈 재개방 '6대 조건' 제시…美 배상·제재 해제 요구

2026년 8월 9일 (일)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 재개방의 전제 조건으로 미국을 향해 여섯 가지 요구 사항을 공식 제시했다. 이란 최고국가안보회의 의장 모하마드 바케르 졸파가르디는 현지시간 8일 미국의 대이란 위협 중단, 이란과 동맹국인 레바논·팔레스타인·예멘·이라크에 대한 공격 중단, 이란에 대한 해상 봉쇄 및 제재 해제, 미국의 군사 행동으로 이란이 입은 피해에 대한 전액 배상, 동결된 이란 자산의 해제 등을 조건으로 열거했다. 이란 혁명수비대 대변인도 별도 브리핑에서 해협 재개방이 미국의 조건 전적 수용과 내정 간섭 중단을 전제로 한다고 못박았다.

같은 날 아바스 아라그치 이란 외무장관은 오만과의 협상 경과를 전하며 진전 상황을 알렸다. 아라그치 장관은 이란과 오만이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는 새로운 해상 항로에 관한 합의에 매우 근접했다고 밝히면서도, 해협의 전면적인 재개방 여부는 결국 미국이 앞서 제시된 조건들을 이행하는지에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이는 이란이 항로 문제와 전면 재개방 문제를 분리해 접근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으로 해석된다.

유조선
Photo by roger4336 · CC BY-SA 2.0

호르무즈 해협은 전 세계 원유 해상 수송량의 상당 부분이 지나는 핵심 항로로, 이란과 미국·서방 간 군사적 긴장이 고조될 때마다 봉쇄 위협의 대상이 돼 왔다. 최근에는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던 선박을 겨냥한 공격 정황이 잇따라 보고되면서 긴장이 다시 높아졌다. 아랍에미리트(UAE)는 자국 국영 석유회사 소속 운반선이 이란 측 미사일 공격으로 화재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했으며, 이에 앞서 미국은 자국 및 동맹국 선박에 대한 공격에 대응해 이란 내 표적을 겨냥한 공습을 단행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란이 요구한 여섯 가지 조건 가운데 특히 미국의 배상 요구는 협상의 최대 난관으로 꼽힌다. 미국이 자국 군사 행동으로 인한 피해를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금전적 배상까지 이행할 가능성은 낮다는 관측이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워싱턴 정가에서도 이란의 요구를 사실상 수용 불가능한 '청구서'로 규정하며, 협상이 단기간에 타결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회의적 시각이 나온다. 다만 오만이 양측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이어가고 있어, 전면 합의 이전이라도 안전 항로 확보 등 부분적 진전이 먼저 이뤄질 가능성은 남아 있다.

컨테이너선
Photo by NOAA's National Ocean Service · CC BY 2.0

국제 유가 시장은 이번 협상 국면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장기화할 경우 원유 수송 리스크가 유가에 반영될 수 있어,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에도 간접적인 영향이 불가피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최근 중동발 리스크가 반복되면서 국내 원/달러 환율과 물가에도 부담 요인으로 작용해 왔던 만큼, 정부와 관련 부처는 협상 추이에 따른 원자재 수급 상황을 계속 점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이란의 6대 조건 제시가 협상 결렬을 의미하기보다는, 향후 논의의 기준점을 명확히 하려는 포석에 가깝다고 분석한다. 배상과 제재 해제처럼 즉각 수용이 어려운 요구를 전면에 내세우면서도 오만을 통한 항로 논의는 계속 진행하는 이중 전략을 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미국과 이란 양측 모두 국내 정치적 명분이 걸려 있는 사안인 만큼, 실제 타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소요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국제사회는 이번 주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추가 협상 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