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 샌디스크와 'HBF' 첫 표준 규격 공개…AI 메모리 생태계 확대
SK하이닉스가 미국 낸드 업체 샌디스크와 함께 차세대 메모리 기술인 'HBF(High Bandwidth Flash)'의 첫 표준 규격을 공개했다. 이번 발표는 4일(현지시간)부터 6일까지 미국 캘리포니아주 산타클라라 컨벤션센터에서 열리는 메모리·스토리지 분야 최대 행사 '퓨처 오브 메모리 앤드 스토리지(FMS) 2026' 개막에 맞춰 이뤄졌다. 두 회사가 공동으로 개방형 표준을 공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HBF는 고대역폭메모리(HBM)와 낸드 기반 저장장치인 SSD 사이에 놓이는 새로운 메모리 계층으로 소개된다. HBM처럼 여러 개의 칩을 수직으로 쌓아 빠른 속도로 데이터를 주고받으면서도, 낸드플래시를 기반으로 해 HBM보다 훨씬 큰 용량을 구현할 수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인공지능(AI) 모델이 대형화되면서 방대한 데이터를 빠르게 처리할 새로운 메모리 계층의 필요성이 커진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업계에서는 HBM이 속도에, SSD가 용량에 강점을 뒀다면 HBF는 그 중간 지점을 메우는 역할을 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번에 공개된 개방형 표준 규격에 따르면 HBF는 낸드를 8단 또는 16단으로 쌓는 방식으로 소자 하나당 최대 512기가바이트(GB)의 용량을 지원한다. 대역폭 등급은 초당 약 0.4테라바이트(TB)에서 최대 3.0테라바이트(TB)까지 세 단계로 나뉘며, 중앙처리장치(CPU)·그래픽처리장치(GPU)와 연결할 때는 칩렛 연결 규격인 UCIe(Universal Chiplet Interconnect Express)를 활용한다.
SK하이닉스는 이번 행사에서 HBF와 함께 10세대 375단 4D 낸드 기술도 함께 선보였다. 이 낸드는 이전 세대 대비 와트당 성능이 2.5배 향상된 것이 특징이며, 회사는 이 기술을 적용한 기업용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eSSD)를 내년 초부터 양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AI 데이터센터용 고성능·고효율 저장장치 수요에 대응하려는 전략으로 해석되며, 낸드 적층 단수를 늘리면서도 전력 효율을 함께 끌어올린 점이 눈길을 끈다.
업계에서는 HBF가 표준화 초기 단계인 만큼 실제 상용화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면서도, HBM 이후를 겨냥한 차세대 메모리 경쟁의 신호탄이라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HBM 시장에서 이미 경쟁 관계에 있는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 마이크론 등 주요 메모리 업체들이 앞으로 HBF를 비롯한 신규 메모리 계층 개발 경쟁에도 뛰어들 가능성이 거론된다. 표준이 개방형으로 마련된 만큼 다른 업체들의 참여 여부도 향후 관전 포인트로 꼽힌다.
샌디스크와의 협력은 낸드 기반 기술을 공동 개발해 표준을 선점하려는 시도로 풀이된다. 두 회사는 개방형 표준을 통해 여러 업체가 호환 가능한 생태계를 구축하는 방식을 택했는데, 이는 특정 기업이 규격을 독점하기보다 산업 전반의 참여를 유도해 시장을 키우려는 전략으로 분석된다.
SK하이닉스 관계자는 이번 HBF 표준 공개가 AI 메모리 솔루션의 폭을 넓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메모리 업계에서는 HBM 중심으로 쏠렸던 AI 반도체 경쟁의 축이 향후 HBF와 같은 새로운 메모리 계층으로 점차 확대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